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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오호

생활 속의 불 / 장광규(張光圭)

by 청심(靑心) 2008. 3. 21.

 

불은 우리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다. 조상들은 화로에 불을 담아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성냥 한 개비라도 아끼려는 마음도 있지만 불을 그만큼 소중하고 가깝게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불을 잘못 다루면 엄청난 피해를 주는 무서운 악마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불조심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표어를 많이 듣기도 하고 많이 보기도 했을 것이다.         
         
1950년대 고향마을은 기와집 몇 채를 빼고는 초가집이었다. 초가집은 화재에 약하다. 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덮어놓았기 때문에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 항상 불안했다. 산에서 낙엽을 긁어다 땔감으로 사용했었다. 밥을 짓기 위해 불을 아궁이에 피우고 잠깐 다른 일을 하노라면 어느 사이 불은 지붕으로 번지기도 했다. 불을 처음 목격한 사람이 큰소리로 "불이야, 불이야"를 외친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이웃집에 알리고 옆집으로 전달이 되어 손에 손에 물통을 들고 나와 불을 끄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가볍고 사용하기 편한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양철로 만든 투박한 용기나 질그릇을 가지고 나온다. 빠른 움직임으로  도랑에서 물을 길어다 합심해 진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여 큰 피해를 입기 전에 불을 끄던 지혜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야산 하나를 넘어가면 면사무소에 의용소방대도 있고 소방차도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각자의 집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불이 나면 신속하게 다 모이기도 힘들고, 화재현장으로 빨리 달려가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불이 난 마을에서 사람이 직접 달려와 면사무소에 알리면 사이렌을 울렸던 것이다. 사이렌이 짧게 여러 번 울리면 화재 발생을, 길게 한 번 울리면 정오를 알리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간혹 어느 동네에서 연기가 까맣게 올라오면 그곳에 불이 났구나 하고 감을 잡아 출동을 하기도 했다. 말이 소방차 지 바퀴가 두 개 달린 리어카 크기의 수동 장비였다. 그걸 끌고 불이 난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동네 사람들에 의해 화재진압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소가 되기도 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단결해서 불 끄는 협력이 잘 되었을 것이다. 남산 아래에 있는 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부대 앞 맞은편에 새로 지은 높은 건물의 대연각 호텔이 있었다. 이 건물에 1971년 12월 25일 화재가 발생했다. 부대에서 그 상황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이 발생한 화재였다. 그때 장안에서는 그 화재를 보고 건물 이름에 대(大) 자가 들어있어, 혹은 연(然)자가 있어 대형화재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래서인지 대연각 호텔은 화재 발생 후 이름이 바뀌었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숭례문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아깝게 불타버린 숭례문은 남대문이라고 부르면 가운데에 대(大)자가 들어간다. 그러나 이름 때문에 큰 불이 나고 안 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365일 빈틈없이 불조심하는 습관을 생활해 나갈 때 불행과 손실을 사전에 막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자주 발생하는 게 산불이기도 하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게 되면 한 번쯤 뒷산에 오른다. 산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이고, 고사목도 함께 뒹굴고 있어
불쏘시개나 마찬가지다. 봄철 산불이 나면 진화하기 힘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이 무렵에 비가 내리지 않고 대기가 건조해 산불이 발생하면, 진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이제는 낙엽이 산촌의 땔감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러기에 해마다 낙엽이 그 자리에서 쌓이고 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거름이 되어 나무의 성장을 돕기도 하지만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상태다.일시적인 출입통제나 산불감시만으로 자연을 지키기에는 너무 허술하고 부족하다. 산불을 막아내고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화재와 수해 중에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 화재가 발생하면 타고 남는 재라도 있고 미리 조심하면 화재를 방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해를 당하면 물살에 다 쓸려 내려가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 또한 수해는 화재보다 예측이 불가능해 예방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따라서 수해보다 화재가 낫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오죽 안타깝고 답답하면 화재와 수해를 비교하겠는가. 화재를 당한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생각해본 말이리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화재를 당하면 어차피 보수하거나 복원을 해야 한다. 그때에 후회하면 아무 소용없으며 재산상으로도 손실과 낭비가 되는 것이다. 화재는 물론 수해도 우리 주위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해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의 기본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2008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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