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니까 아주 오래되었다. 담임선생님은 이야기해 주기를 무척 좋아하셨다. 학과 진도를 빨리 나간 다음 나머지 시간은 이야기 시간으로 채웠다.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꼭 칠판에다 우리나라 지도를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그려놓았는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중에 '거짓말과 우산'이라는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거짓말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꼭 필요한 때에만 사용하라고 했다. 사람이 평생 동안 세 번 정도는 거짓말을 해야 할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요점이다. 물론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하고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좋은 토양이나 좋은 환경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선생님은 딱 한 번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6·25 동란 때 선생님께선 소년이었는데 적에게 잡혀 산속에서 죽게 될 위기를 맞게 되었단다. '사람은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살아있어야 좋은 일도 할 수 있고, 부모님께 효도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해서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거짓말과 참말의 기준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단 한 번밖에 거짓말을 안 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수도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죽음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거짓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는 절박한 심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지금은 선생님의 이름도 얼굴도 희미하다. 다만 생사의 갈림길에서나 거짓말은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진실된 생활을 강조하시던 그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다.
선생님은 또 우산을 항상 가지고 다니라고 하셨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산은 비가 와야 필요한 것인데, 멀쩡한 날에 왜 무겁고 귀찮게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더욱이 그때는 우산이 흔할 때가 아니었다. 우산을 왜 지니고 다녀야 하는가는 너희들이 커가면서 느끼도록 숙제로 남기겠다고 마무리를 안 해주었다.
성장하면서 우산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듯싶었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면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막을 수가 있고, 남의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고, 조그만 일이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유비무환의 정신을 길러주려고 그런 말씀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선생님의 참뜻은 알 수 없으며 영원히 숙제를 풀지 못할 것 같다.
요즘 거리에 나가면 머리카락이 빠진 이른바 대머리를 많이 보게 된다. 유전적이긴 해도 그중에 한 사람인 나도 산성비를 맞았다. 산성비를 많이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아마 선생님은 우리가 어린 시절인 그때에 이미 산성비의 유독성을 예견하고 우산을 가지고 다니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2009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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