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입동이다.
푸른 하늘이며 산들바람이랑 단풍이랑 그대로 남겨두고 또 하나의 계절이 문턱을 넘으려 한다.
오늘까지는 흙으로 몸을 덮어주어야 겨울을 땅속에서 잘 지내다 봄이 오면 파릇파릇 잘 자라 열매를 맺는다는 보리. 그 보리갈이를 적기에 하려고 땀 흘리던 어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초가지붕을 새롭게 단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해 봄까지 먹을 김장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이른바 '월동준비'인데 입동을 전후해 날을 잡아서 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보리갈이는 하지도 않고, 초가집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더욱이 김장은 아무 때나 해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되기 때문에 입동의 의미를 못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겨울이 멋과 맛을 못 느끼는 계절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보리가 겨울에 얼지 않게 흙으로 골고루 정성스럽게 덮어주는 일, 지붕을 걷어내고 새 이엉으로 지붕이 새지 않게 잘 덮는 일, 직접 재배한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그는 일 등은 겨울을 준비하는 큰 일로 생각했다. 그만큼 이 일들을 잘 치르기 위해서는 재료도 많이 준비해야 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일들을 할 때는 이웃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일도 함께하고 음식도 함께 나눠 먹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겨울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 시절을 잠시 생각하는 순간, 짧은 해가 찡그리며 서산으로 숨는다.
2001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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