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心의 詩

살아가는 이야기 / 장광규

청심(靑心) 2014. 5. 15. 05:42

 

 

살아가는 이야기

 

                                    靑心 장광규

명절 때 고향에 가면
객지로 나간 사람도 만나고
그곳에 사는 사람도 보는데
앞집 신촌댁 작은아들은
서울에서 돈을 벌어 집이 몇 채가 있고
옆집 큰아들은 도시로 나가 사는데
아내를 잘 만나 행복하다고 웃음 짓고
외딴집에서 가난하게 살던 수철이는
논농사를 잘 지어 돈을 많이 모아
현대식으로 집도 짓고 부자가 되었단다

아랫마을에 살던 명수란 친구는
어릴 때 어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더니
도시로 나가 큰 공장을 차리고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한단다
면사무소에 다니던 부지런한 남길이
퇴직 후엔 농사지으며 동네 일도 보고
윗마을에 동촌댁은 둘째 며느리가
필리핀인가 베트남에서 왔는데
말하는 것도 음식 만드는 것도 서툴단다

돈 버는 재주도 없고
내세울 자랑거리도 없는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가만히 들으면서 고개만 끄덕인다
어릴 적 같이 살았던 사람들
한 곳에서 모두 만날 수도 없고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다 듣지도 못했지만
세상 살아가는 모습은
여기나 거기나 별 차이 없어 보인다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