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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心의 詩

고무통 / 장광규

by 청심(靑心) 2014. 8. 30.

 

 

고무통

 

                               靑心 장광규

 

물을 받아놓고 쓸 일이 생기거나
김장철에 배추를 절일 때
사용하려고 나를 데리고 왔을 겁니다

 

평소에는 옥상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맑은 날이면 햇빛이나 쐬며 졸고
비 오는 날은 비 맞으며 지냅니다
잡동사니를 가득 안고 있어
항상 든든합니다

 

방안에 도배를 하거나
전구를 바꾸어 끼우거나
페인트 칠할 곳이 생기면
아침부터 몸무게를 줄이고
물구나무서기를 시키고 나서
나를 밟고 올라가 일을 합니다

 

내 몸에 페인트가 묻기도 하고
상처가 나기도 하며 지저분해지지만
그때마다 깨끗이 목욕을 할 수 있어
그래도 행복합니다
나에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잊지 않고 가끔 찾아주니까
외롭지 않아서 좋습니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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