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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노라면148

토정 이지함 선생 / 장광규 서울 마포구 토정로 31길 23 인도에 이지함 선생 상과 소개글이 있다. 토정 이지함 선생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기인으로 의 저자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한강의 마포강변에서 흙담 움막집을 짓고 청빈하게 살았다. 그로 인하여 '토정'이란 호가 붙여지게 된 것이다. 그의 기이한 행동과 예언 술수에 대한 많은 일화가 세간에 전해지고 있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수리, 의학, 천문지리 등에 달통하였다.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났다. 일 년의 운세를 보아 달라는 요구가 많아져서 을 지었다고 한다. 2024. 3. 2.
거기가 그곳 / 장광규 볼일이 있어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43길 13의 서울지방병무청에 갔다. 용무를 보고 나오며 경내에서 '해군본부 주둔 기념비'를 보게 된다. 이곳에 1960년 9월 1일부터 1993년 6월 17일까지 해군본부가 있었다는 글이다. 1970년대 초반 서울 필동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 해군본부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나러 이곳에 온 적이 있다. 그 푸른 날의 추억이 떠올라 한동안 생각에 잠겨 마음도 몸도 젊어지기도 했다. 2024. 2. 7.
동양극장 터 / 장광규 1935년, 동양극장이 우리나라 최초로 연극 전용 극장으로 문을 연 곳이다. 광복 후 영화관으로 바뀌었으며, 1976년 폐관되어 1990년에 철거되었다.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번지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가까이에 있다. 2023. 12. 20.
김종서 집터 / 장광규 조선시대 좌의정을 지낸 김종서의 집터. 서울 중구 새문안로 16번지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이 가까이에 있다. 2023. 12. 6.
동활인서 터 / 장광규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63에 있는 동활인서 터. 조선 초기 전염병 환자와 가난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서울의 동쪽과 서쪽 두 곳에 설치한 관청이 활인서다. 도성 안의 환자 특히 전영볌 질환을 주로 구호한 의료기관이었다. 동활인서는 동소문 밖에, 서활인서는 서소문 밖에 있었으며 1882(고종 19년)에 폐지되었다. 2023. 10. 28.
초교(初橋) 터 / 장광규 초교(初橋)는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흥덕동천과 종로대로가 만나는 곳에 놓였던 다리다. 동대문을 지나 도성 안으로 들어올 때 처음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다. 돌로 만들어 '초석교(初石橋)'라 하고, '첫다리' 또는 도성 동쪽에 있어 '동교(東橋)'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 시대 임금이 선농단과 왕릉에 행차할 때 이곳으로 다녔으며 너비는 8미터 정도였다. 현재는 돌다리의 흔적을 볼 수 없으며 종로꽃시장의 꽃들이 웃으며 반긴다. 서울 종로구 종로41길 1번지로 가까이에 동대문과 동대문역이 있다. 2023. 9. 15.
내자시 터 조선 시대 궁중의 쌀과 채소 그리고 과일 등 생필품을 공급하고 연희 등을 관장한 관청인 내자시 터. 서울 종로구 사직로 106번지로 경복궁역이 100m 거리에 있다. 2023. 8. 12.
균역청 터 / 장광규 균역청은 1751년(영조 27)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고 국역 부담을 균등하게 할 목적으로 균역법이 제정됨에 따라 관련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설립한 관청이다. 1753년(영조 29) 대동법 시행 관청인 선혜청에 통합되었다. 서울 중구 퇴계로 173번지로 충무로역 5번 출구에서 100m 거리다. 2023. 7. 22.
종묘 하마비 / 장광규 ​ 서울 종로구 종로 157의 종묘공원 앞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말을 타고 이 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각 궁궐의 정문 밖, 종묘 입구에 세웠으며, 성균관을 비롯한 각 지방의 문묘 밖 홍살문에 하마비를 세웠다. 하마비는 조선 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석비를 치칭하는 용어다. ​ 1413년(태종 13) 2월에 처음으로 예조에서 건의하여 왕의 허가를 받아 나무로 만든 표목(標木)을 세웠다. 표목 전면에는 “대소 관리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大小官吏過此者皆下馬).”고 쓰여 있다. 이 표목은 후일 돌을 깎아 비석 형태로 만들었는데 오늘날까지 실물이 전해오는 것이 많다. 2023.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