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노라면161 서울지구 병사구사령부 터 / 장광규 서울 종로구 종로5길 7에 있는 서울지구 병사구사령부 터 6·25 전쟁 당시 징병업무를 담당한 서울지구 병사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정부수립 후 병역법이 공포되면서 병역모집은 지원병제에서 징병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징병업무 수행을 위해 각 지구별로 병사구사령부를 설치했지만, 정부의 예산 부족으로 당장 징병제를 실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50년 3월 해체되었다. 전쟁 발발 후 정부는 병력 보충이 시급해지자 가두 모집, 강제 징집 등을 시행했다. 서울수복 무렵인 9월 26일 서울지구 병사구사령부가 재설치되어 현역 장병 및 제2국민병 소집 업무 등을 담당하였다. 2024. 6. 30. 조선시대 우물 터 / 장광규 서울 종로구 종로5길 7에 있는 조선시대 우물 터 청진8지구 우물은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피맛길과 피맛2길이 만나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우물은 축조방식과 재료가 우수하고 특히 남측에 배수로의 보강을 위해 2단 이상의 판재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또 우물 주변에 돌을 깔아 배수를 용이하게 하고 우물의 접근성을 높였다. 1426년 세종은 한양의 각 관청에 우물을 두 개씩 파서 물을 저장하라는 명을 내려 화재에도 대비하였다. 나라의 우물이었던 청진8지구 우물은 도성민의 식수 확보에 큰 도움이 되었다. 2024. 6. 22. 종침교 터 / 장광규 서울 종로구 사직로8길 39의 허종 허침 형제가 갑자사화의 화를 면한 일화가 있는 다리 터. 조선시대 성종이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를 폐하고 사사할 무렵 허종은 지의금으로 허침은 현방승지로 있었다. 형제가 어명을 받고 입궐하려다 생각을 바꿔 성종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우의정 이극균 판서 이세좌 두 숙질이 대신 그 업무를 맡게 되었다. 뒤에 연산군이 즉위하여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두 이(李)는 참화를 입었고 허씨 형제는 끝내 탈없이 보신을 할 수 있었다. 성종의 부름이 있을 때 건너지 않은 이 돌다리를 형제의 이름을 따서 종침교라 했다. 2024. 6. 15. 장승배기 / 장광규 서울 동작구 상도로 지하 188번지에 7호선 장승배기역이 있는데, 6번 출구로 나가면 두 개의 장승 옆에 장승배기 표석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현륭원에 참배하러 가면서 쉬었던 곳으로, 당시 인가도 없고 오가는 사람도 적었다. 정조의 지시로 장승을 세우게 되었으며 장승배기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2024. 5. 12. 토정 이지함 선생 / 장광규 서울 마포구 토정로 31길 23 인도에 이지함 선생 상과 소개글이 있다. 토정 이지함 선생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기인으로 의 저자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한강의 마포강변에서 흙담 움막집을 짓고 청빈하게 살았다. 그로 인하여 '토정'이란 호가 붙여지게 된 것이다. 그의 기이한 행동과 예언 술수에 대한 많은 일화가 세간에 전해지고 있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수리, 의학, 천문지리 등에 달통하였다.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났다. 일 년의 운세를 보아 달라는 요구가 많아져서 을 지었다고 한다. 2024. 3. 2. 거기가 그곳 / 장광규 볼일이 있어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43길 13의 서울지방병무청에 갔다. 용무를 보고 나오며 경내에서 '해군본부 주둔 기념비'를 보게 된다. 이곳에 1960년 9월 1일부터 1993년 6월 17일까지 해군본부가 있었다는 글이다. 1970년대 초반 서울 필동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 해군본부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나러 이곳에 온 적이 있다. 그 푸른 날의 추억이 떠올라 한동안 생각에 잠겨 마음도 몸도 젊어지기도 했다. 2024. 2. 7. 동양극장 터 / 장광규 1935년, 동양극장이 우리나라 최초로 연극 전용 극장으로 문을 연 곳이다. 광복 후 영화관으로 바뀌었으며, 1976년 폐관되어 1990년에 철거되었다.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번지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가까이에 있다. 2023. 12. 20. 김종서 집터 / 장광규 조선시대 좌의정을 지낸 김종서의 집터. 서울 중구 새문안로 16번지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이 가까이에 있다. 2023. 12. 6. 동활인서 터 / 장광규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63에 있는 동활인서 터. 조선 초기 전염병 환자와 가난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서울의 동쪽과 서쪽 두 곳에 설치한 관청이 활인서다. 도성 안의 환자 특히 전영볌 질환을 주로 구호한 의료기관이었다. 동활인서는 동소문 밖에, 서활인서는 서소문 밖에 있었으며 1882(고종 19년)에 폐지되었다. 2023. 10. 28. 이전 1 2 3 4 5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