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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며 느끼며

방 하나의 전쟁 / 장광규(張光圭)

by 청심(靑心) 2005. 7. 21.

 

삼층 단독주택의 옥탑에 살고 있는 아가씨가 사정이 생겨 시골로 내려가는 바람에 방을 내놓아야만 했다. 이사철도 지나고 방이 남아돈다고 하는데 쉽게 나갈까 걱정이 앞선다. 부동산중개소에 내놓는 것보다 생활정보지에 올리기로 하고 전화를 했다. 다음날 아침 생활정보지를 꺼내다 보니 옥탑방의 월세 정보가 올라 있었다. 오전 열 시쯤 되었을 때 방에 대하여 물어보는 첫 전화가 왔다. 

그 뒤로 계속해서 방을 보겠다는 전화가 오는 것이었다. 옥상에 있는 방은 거의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은
방이다. 그래서 혼자 살겠다는 사람, 여자보다는 남자를 두기로 했다. 헛수고 안 하게 전화로 자세히 가르쳐주고 물어보도록 한 다음 방을 보러 오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화로 '방 내놓았습니까?' 하는 말만 물어보고는 곧바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방을 얻고자 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오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오시거나 가족들 또는 친척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사전에
방에 대해 정보를 모르고 온 사람들은 두 사람이 쓰도록 방을 달라고 하거나, 여자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힘들어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루에 서른 통도 넘게 전화가 왔는데 문의하는 성비는 반반이었다. 사전에 방에 대하여 자세히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현명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맨 처음 전화한 사람은 퇴근하고 밤에 와서 방을 보겠다고 했다. 밤에 와서 보고는 내일 계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오지 않았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돈이 부족했던 걸로 추측이 된다. 그런가 하면 방을 보고 나서 은행에 가서 금방 돈을 찾아오겠다는 사람도 몇몇 있었는데 오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밤 열 시가 넘어서도 방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본인들이 직접 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보고는 집에 가서 연락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제시한 계약금을 깎아달라거나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삼일 만에 월세 계약이 체결되어 전화와의 전쟁이 끝났다. 계단 오르며 방 보러 다닌 사람들도 힘들었지만, 위치랑 크기랑 설명해 주느라 신경을 써야만 했다. 

결론을 이야기해야겠다. 이사철은 봄이나 가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휴일을 택해서 이사를 하기도 했다. 더러는
손 없는 날을 잡아 이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사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아무 때나 이사를 하는 것이다. 이사대행업체가 생겨나 이사하기도 쉬워졌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렇게 아파트를 신축하는데도 집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방 하나 구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전세 월세가 오르고 있다고 했다. 이별이 있었고 또 새로운 만남이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사람 아무 탈 없이 잘살다 나갔으면 좋겠다. 속히 집도 장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1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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