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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며 느끼며

촌평 2

by 청심(靑心) 2005. 2. 18.

 

 버려야 얻을 수 있다 - 안도현
 
 < 돌담 앞에서 >
 
 크고 작은 돌멩이     
 세모난 것     
 네모진 것     
 둥글둥글한 것들이     
 서로 껴안고 보듬으며     
 침묵으로 공존하고 있다     
      
 붙임성 없고 우악스러워     
 와르르 저절로 허물어질 것 같지만     
 보기와는 달리 야무진 걸작이다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로     
 풍경사진의 배경으로     
 비바람 견뎌온 이끼 낀 보물이다     
      
 돌 틈 사이에 막대기 꽂아     
 호박넝쿨 뻗어나게 해주면     
 열매 주렁주렁 매달리는     
 평화로운 자연의 조화다

장광규 씨의 「돌담 앞에서」는 언뜻 보아 정겨운 풍경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요란한 수사가 시적 진정성에
손상을 입히고 있는 경우라 하겠다. ‘돌담’ 앞에다 붙인 ‘침묵’, ‘걸작’, ‘보물’, ‘평화’, ‘자연의 조화’와 같은 ‘붙임성 없고 우악스러운'  말 때문에 얼마나 시를‘와르르 저절로 허물어’지게 하는가? 예를 들어 ‘침묵으로 공존하는 돌담’은 ‘서로 껴안고 보듬으며’로써 족하다. 뒤에 오는 무거운 수사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돌담 앞에서」를 함께 읽어보자. 크고 작은 돌멩이 세모난 것 네모진 것 둥글둥글한 것들이 서로 껴안고 보듬으며 침묵으로 공존하는 돌담 붙임성 없고 우악스러워 와르르 저절로 허물어질 것 같지만 보기와는 달리 야무진 걸작 꼬마들의 술래 놀이터로 풍경사진의 배경으로 비바람 견뎌온 이끼 낀 보물 돌 틈 사이에 막대기 꽂아 호박넝쿨 뻗어 나게 해주면 열매 주렁주렁 매달리는 평화스러운 자연의 조화 행과 연의 구분도 대체로 명확하고, 매 연마다 마지막 행을 명사형으로 끝을 맺은 것이 간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불필요한 수식어가 많이 숨어 있다. 이 시를 다음과 같이 고쳐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세모와 네모
사이 둥글둥글한 것들이 있다 붙임성 없고 우악스러워 와르르 저절로 허물어질 듯 술래 놀이터로 풍경사진으로 돌 틈을 비집고 호박넝쿨 주렁주렁 매달린다 물론 장광규 씨의 원작보다 고친 시가 더 좋은 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미 전달이 더 명확하고 시의 흐름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고친다고 해도 이 시가 좋은 시라고
하기 힘든 것은 우선 1연만 보더라도 ‘세모와 네모 사이/ 둥글둥글한 것들이 있다’라는 말이 관념적일 뿐 구체성이 없다. ‘돌담 앞에서’ 겨우 ‘세모’, ‘네모’ ‘둥글둥글한 것’ 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는가? 예를 들면 ‘시집살이 누이’라든가 ‘객지로 떠난 큰형’, ‘종일 방안에 있는 병든 할머니’ 등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누이나 형, 할머니가 없다면 그 밖의 얼굴이라도 상관없다. 그렇게 되면 돌담에 박힌 세모, 네모, 둥글둥글한 것들이 구체적이면서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나마 고친 시의 마지막 연에서 ‘세모와 네모 사이’가 ‘돌 틈’으로 ‘둥글둥글한 것’이 ‘호박넝쿨’로 대칭을 이루면서 어느 정도 시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시인 안도현 님의 월요 촌평 - 2001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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