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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며 느끼며

늦은 후회 / 장광규(張光圭)

by 청심(靑心) 2012. 12. 8.

 

한 해가 저물어간다. 이맘때면 자연스레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본다. 어느 해보다 일도 많았고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아쉽거나 그립기만 한 일, 더러는 지워버리고 싶은 일도 있다. 물론 즐거운 일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사노라면 누구에게나 희로애락이 있기 마련이지만, 올해 나에게는 제일 슬픈 일이 있었다. 나직이 부르기만 해도
포근하고 정이 가는 이름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이별하는 슬픔이 있었다. 올여름은 무척 더웠다. 고향에는 그 더위 속에서 병마와 힘들게 씨름하고 계신 어머니가 계셨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더 많이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일 내려가야지, 내일 내려가 뵈어야지 하면서 더위 탓으로 쉽게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시골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미루지 말고 내려갔어야 했는데, 이제 어머니 얼굴을 보며 말을 할 수 없다는 죄책감으로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얻어맞지도 않았는데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고향으로 달려가 장례식장에서 편히 잠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 마음속으로 죄송하다며 수없이 용서를 빌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기에. 이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부모님을 잃었기에 허무하고 허전하기만 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함께 생활하는 가족에게라도 지금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날 이후 나는 반벙어리로 지냈다. 지인들에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 아니 도저히 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멍청이가 되어 시간이 지나갔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모든 일에 하고 싶은 의욕을 상실하여 말하기도 귀찮고 생각하기도 싫었다. 누가 말해도 건성으로 대답한 것 같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낼 수는 없기에 이제 글을 통해서라도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내놓고 싶다. 아무에게라도 털어놓고 진실된 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꺼내놓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무게가 언제까지나 나를 짓누를 것 같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어린양을 부리던 시절부터 아이들이 태어나 어른이 되어서까지 늘 어머니에게 걱정거리만 만든 
불효한 아들이다. 어머니께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다. 이제 어머니를 부를 수도 없고 대답도 들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일이 끝나고 가는 날 꼭 어머니를 만나 엎드려 절하고 싶다. 못다 한 자식의 도리를 그곳에서라도 실천하고 싶다. 

 

언제나 후회는 늦게 온다. 그러나 지나간 뒤에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모님 살아계실 때 제대로 해야 한다  많이 들었고, 많이 보았고, 느껴서도 알고 있는 일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제라도 잘못한 것을 알고 뉘우치며 털어놓으니 홀가분하다. 2012년이 지나가고 새해가 오겠지만 나에게는 잊히지 않고 영원히 기억될 해가 될 것 같다.       
       
                                                               2012년 1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