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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심(心)이다

오랜 기다림 / 장광규

by 청심(靑心) 2021. 2. 2.

 

 

시집 '시는 꽃이 된다'를 내며 

내가 태어난 곳은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농촌마을이다. 어린 시절, 겨울이 가고 저만큼 봄이 올 때쯤이면 할머니는 제일 먼저 호박씨를 챙기고 거름을 준비했다. 할머니를 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밭으로 갔다. 밭 귀퉁이에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넣고 흙으로 덮은 다음 정성스럽게 씨앗을 심었다. 다음 일요일에 가보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 넝쿨이 길게 뻗어가고 호박꽃도 노랗게 피어있고, 호박벌도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식물의 생명력과 움직임이 어린 마음속에 신선함과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논길을 걷고 밭길을 걷는다. 산길을 지나 내를 건너 학교를 오가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흙먼지가 날리는 신작로를 걸으면서 농촌의 향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보며 계절의 흐름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평화로움과 넉넉함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호박꽃 냄새는 세월이 흘러가도 향기로 가까이 살아난다. 또한 시골의 그 모습도 머릿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눈 덮인 하얀 겨울 속에서 생활하다 파란 새싹이 돋아나는 봄은 새로운 힘을 주고 좋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울타리 안에 갇힌 답답함의 겨울이 지나고, 들판을 누비고 다닐 수 있는 봄이 오면 날아갈 것만 같은 자유로움이 있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시를 쓰고 싶었다. 호박꽃 향기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소박하면서도 아주 자연스러운 글을 쓰고 싶다. 고향의 벌판 같은 넓은 마음으로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다. 시는 일상생활 속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도록 나타내는 일이다. 보고 느끼고 겪은 일들을 순화된 언어로 간결하게 표현해 보고 싶다.

시집의 제목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고향의 냄새가 풍기는 걸 생각하다  최종적으로 「시는 꽃이 된다」를 선택하기로 했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가 난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여유롭게 하고 심성을 곱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 꽃이 시들면 열매를 맺어 씨를 간직하고 그 씨앗은 또 다른 나무가 되어 꽃이 핀다. 시는 아름답다. 아니 아름다워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길이다. 다시 말해서 많이 읽히는 글이 생명력이다. 꽃나무는 꽃이 지면 씨앗을 맺고 그 씨앗으로 생명을 연장해 가듯 글 속에도 씨앗이 있어야 한다. 알맹이 있는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으로 책 제목도 영원히 살아 숨 쉬도록 정한 것이다.

첫 시집으로 얼굴을 내밀며 인사한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시집이 많은 사람들 곁으로 갔으면 좋겠다. 직접 대화를 못하는 사람들과 간접적으로 대화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살아온 시대에도 차이가 있어 공감의 폭도 여러 가지로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나의 글 속에는 흙냄새 나는 이야기가 주로 등장함을 부인할 수 없다. 도시에는 콘크리트 건물이 있지만 농촌에는 목재로 지은 집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나의 글은 촌스럽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성장기를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보탬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눈물보다는 웃음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희망을 가득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