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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심(心)이다

시집에서(74) / 장광규

by 청심(靑心) 2023. 11. 11.

 

 

초록은 연속이다

 

                             靑心 장광규

 

처음 찾아오는 초록은
수줍은 듯 웃으며 인사하지
어리고 순한 생김새
싫어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착하고 연약한 모습이지
온 세상이 새롭게 펼쳐지며
흥겹고 따스한 일상이지

 

자고 나면 조금씩 자라며
푸른 얼굴이 되어가지
씩씩하고 활기가 넘치니까
주변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스스로도 기세가 당당하지
언제까지나 푸름이 유지되고
인기가 있을 것만 같지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아
젊음을 시기하는 무더위와
시간의 흐름을 버티지 못해
강한 마음이 차츰 약해지기도 하지

 

더러는 노랑으로 또는 갈색으로
말없이 물들어 가지
듣기 좋게 아름답다 말하지만
윤기 잃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허무함을 속으로 삭이지
드디어 바람이 불어대면
춥다거나 떨린다는 소리 못하고
우수수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하지
입었던 옷 차곡차곡 다 벗으니
아낌없이 다 주며 희생한다고
추켜세우는 것도 잠시뿐이지

드디어 눈이 내리면
온몸이 눈에 덮여 하얗게 되지
지금껏 마음에 담기도 하고 간직했던
크고 작은 생각 다 비우고 지우니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해
포근함을 느끼며 지낼 수 있지
다시 펼쳐질 긴 여정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준비하여
변함없는 희망을 보여주려고
또다시 초록의 꿈을 키워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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