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도 피지만 새가 노래하고 닭은 새벽을 알리며 울었다.
물이 깨끗하고 바람이 시원하고 공기가 오염되지 않아 천혜의 자리라고 구전으로 이어오고 있다.
가까이는 낮은 산, 멀리는 높은 산이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이 동네를 지켜주는 형상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사용하였다. 읍내를 가려면 산길을 걷고 내를 건너며 이십 오리를 걸어서
가야만 했다. 70여 호가 정답게 모여 사는 집성촌인 마을은 농사와 함께 소와 돼지 그리고 개를
키우기도 했다. 특히 집집마다 닭을 키우며 명절이나 생일 또는 손님이 오면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밤에는 닭을 닭장에 가두지만 낮에는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풀어놓아 마당으로 뒤뜰로 오가며 풀도
뜯고 벌레도 잡아먹고 물도 마시며 자랐다. 모이를 줄 때는 '구구, 구구'하며 닭을 부르면 신기하게도
닭이 모여들었다. 암탉이 둥우리에 알을 낳고는 '꼬끄댁 꼭꼭, 꼬끄댁 꼭꼭'하며 사람에게 알리기도
하였다. 암탉이 낳은 계란은 반찬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삶아서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알을 넉넉하게 부화시켜 노랗고 하얀 예쁜 병아리들이 태어나 일 년 동안 사용하고 남을 만큼
해마다 병아리 부화에 정성을 기울였다.
조용한 산골에 새벽이면 어김없이 닭이 운다. 날이 샐 무렵이다. 홰에서 장닭이 날개를 치며 '꼬끼오
꼬르르 ~'하며 서너 차례 힘차게 울어댔다. 앞집에서 뒷집에서 옆집에서도 울어 온 동네가 장닭
울음소리로 잠에서 깨고 일어나는 시간이 되었다. 마을에 괘종시계가 몇 집만 있던 시절이라 닭이
시간을 알려 준 셈이다. 대형 양계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집집마다 닭을 키우는 풍습은 시나브로
없어지게 되었다. 새마을운동을 할 때 전깃불도 밝히고 버스가 정기적으로 다니게 되고 경운기 옆에
자가용도 있는 도시화가 되었다. 그 무렵 월남까지 다녀온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고향에서 읍내로
가는 길도,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기와집으로 고치는 힘든 일에 함께한 것이 생생하다. 강산이
수없이 변한 오래된 일이지만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그때가 떠오르면 행복한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닭에 관한 속담을 보기로 하자.
* 닭 물 먹듯 -무슨 일이든 그 내용도 모르고 건성으로 넘기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닭 발 그리듯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솜씨가 매우 서툴고 어색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닭 싸우듯 -크게 으르지도 못하고, 서로 엇바꾸어 가며 상대를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닭 잡아 할 제사 소 잡아 하게 된다 -어떤 일을 처음에 소홀히 하다가 나중에 큰 손해를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암탉이 운다 -가정에서 여자가 남자를 제쳐 놓고 집안일을 좌지우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날이 샜다고 울어야 할 수탉이 제구실을 못하고 대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뜻으로,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제쳐 놓고 떠들고 간섭하면 집안일이 잘 안된다는 말.
* 암탉이 울어 날 샌 일 없다 -암탉이 운다고 하여서 날이 새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자를 제쳐 놓고 여자가 모든 일을 좌지우지하면 일이 제대로 될 수 없다는 말.
* 장닭이 울어야 날이 새지 -집안의 일 처리는 남편이 주관해서 하여야 제대로 됨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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