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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풍악산 아래 첫 동네 / 장광규(張光圭)

by 청심(靑心) 2008. 9. 22.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산 18번지에 보물 423호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불상은 자연 암석의 한 면을 다듬어 거기에 부처의 앉은 모습을 새김 한 마애불로 여겨진다. 도선 스님이 하룻밤 만에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몸 둘레에 서린 빛을 줄에 꿴 구슬로 둥글게 감싸서 표현한 것은 희귀한 예이다. 왼쪽 어깨에 걸친 옷은 단순한 선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이목구비를 생동감 있게 조각하였다. 넓은 어깨, 불룩한 가슴, 통통한 팔·다리에도 입체감이 실려 있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불상은 뚜렷한 입체감과 생동감을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로 여겨진다. 높이 3.4m의 불상은 동남쪽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절은 온데간데없고 깨진 기왓장과 그릇 조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불상은 해발 600m의 풍악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빈대 때문에 절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절터가 있었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으나 흔적도 없었다. 다만 불상 가까운 곳에 평평한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이곳이 절터였다면 아주 작은 규모였으리라 추정해 본다. 불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이곳이 나의 고향 뒷산이다. 이웃에 있는 초등학교의 단골 소풍코스이기도 하다. 고향에 있을 땐 자주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그때만 해도 불상 왼쪽에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고목이 된 채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불상이 있는 곳을 '죽뱅이골'이라 부르고 그 골짜기로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재를 넘으면 '순창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군 동계면이 나온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순창 사람은 남원 장에서, 남원 사람은 순창 동계 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려고 재를 넘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산에는송이버섯이 많이 나고, 철 따라 머루 산딸기 등 산열매가 눈길을 끈다. 골짜기마다 맑은 냇물이 기분 좋게 소리를 내며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대산면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곳이다. 5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부지런한 마을이다. '신촌'이란 마을 이름을
가졌다. 옛 이름은 '석갓'이었는데 돌도 많고 갓을 쓴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또는 설 씨들이 많이 살아서 '설가'라 부르던 것이 '석갓'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돌이 많기는 많은 곳이다. 옛날 도로포장이 안됐을 때에도 마을길이 돌만 밟고 다니면 신발에 흙이 안 묻을 정도로 길바닥에 납작납작한 큰 돌들이 박혀 있었다. 70년대 초 새마을운동 때 헐기 전에는 흙이나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돌로만 쌓은 담으로 집집마다 둘러싸여 있었다. 지금도 돌담은 많이 남아있다. 마을 위쪽에 '담안들'이 있는데, 이곳이 옛 마을 터였다고 한다. 물길이 멀고 터가 좁아 아주 오래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현재는 주민 대부분이 장 씨들이며 설 씨는 살지 않는다. 동네 뒷산인 풍악산의 매봉골, 점피나무골, 죽뱅이골, 개비치골, 막터골에서 흐르는 물이 내려오면서 점차 합쳐져 흐른다. 이 냇물이 흐르는 좌우로 동네가 형성되어 있어,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사용하는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남원은 전북 남원인데, 전남 남원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남원시내에서
마을까지는 8km로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시내버스도 마을까지 직접 가는 것도 있고 옆 동네인 운교리까지 다니는 차도 많은 편이다. 동네 사람들은 불상이 있는 곳을 '미륵골'이라 부른다. 해발 230m에 있지만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면 400m도 훨씬 넘으리라 생각된다. 예전에는 '담안들'을 지나면 야산으로 된 '정골'이 나오는데 이 길로 다녔다, '정골'의 이름도 '절골'이라 부르던 것이 '정골'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이곳으로 다녔으나 이젠 이 길은 없어지다시피 되었다. 지금은 농로로 된 콘크리트 길을 따라 올라가면 큰 저수지가 있다. 계속해서 가면 또 하나의 저수지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오동들'이 나온다. '오동들'에서 '방죽골'이 있는 왼쪽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차가 다닐 수도 있는데 '연화골' 입구까지만 되어 있고 여기서부터는 걸어야 한다. '개비치골'과 '막터골'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진 곳이 '연화골'이다. 이 '연화골'은 불상이 있는 곳에서 좌측 아래쪽인데, 연못에 연꽃이 있어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으론 골짜기 모양이 연꽃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곳을 동네에서 불상까지 가는 길의 중간쯤 생각하면 된다.

풍악산은 바위와 소나무가 많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이곳은 산행코스로도 알려져 등산하는 사람들도 이따금 보인다. 하지만 나무가 너무 울창해 혼자 오르기에는 벅찬
곳이다. 내가 2000년 봄에 오른 것이 최근의 일이다. 고향에서 생활하는 동생과 함께 동행을 했다. 스님 한 분이 언제부턴가 정착해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그때다. 스님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불상도 잘 보존하면서 절도 재건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멀리에 스님이 기거하는 것으로 보이는 천막을 뒤로하고 서둘러 산을 내려온 지 오래되었다.

                                                            2008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