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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심(心)이다

시집에서(53) / 장광규

by 청심(靑心) 2022. 11. 25.

 

물은 살아 있다

 

                              靑心 장광규

 

물은 아주 작은 것이다
씨도 열매도 없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고
밀가루처럼 부드럽기도 해
무서워 멀리 피할 이유도 없고
두려워 숨을 필요도 없다

본디 작고 연약하지만
손에 손을 잡고 모여
개울을 만들고 강을 이루고
흘러가 바다에서 출렁거린다

 

평소엔 한없이 순하지만
기온이 내려가 추위를 느끼면
없는 힘 있는 힘 다 모아
하얀 얼굴로 무장하고
몸은 더욱 강해진다
서로 어깨와 어깨를
가슴과 가슴을 얼싸안아
억세고 끈끈한 포옹을 한다
얼마나 세게 끌어안은 지
떨어지지 않는 하나의 덩어리
얼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은
차가운 냉정한 표정
돌처럼 무심한 단단함도
남녘에서 봄바람이 불어오고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면
너그럽게 마음을 풀어
처음처럼 다시 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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