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은 1398년(태조 7)에 세울 당시 서울 도성의 동쪽 문입니다. 지금의 문은 1869년(고종 6)에 다시 지은 것이다. 당시 서울 성곽에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세웠다. 동서남북의 사대문에는 각각 인(仁) ㆍ 의(義)ㆍ 예(禮) ㆍ지(智)의 글자를 넣어 이름을 지었는데, 그중 동쪽의 대문을 흥인문이라 하였다. 현판에 특별히 지(之) 자를 넣은 것은 동대문 앞의 평평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한 의미라고 한다.
흥인지문은 서울의 숭례문과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큰 성문입니다. 성벽과 이어진 축대에 아치형의 통로를 내고, 그 위로 문루를 세워 성문을 만들었다. 서울의 성문 가운데 문루를 2층으로 만든 것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밖에 없다. 문루는 문을 지키는 장수가 머무는 곳으로 유사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의 역할도 했다. 문루 바깥쪽으로는 벽돌로 된 담장과 나무판으로 된 창문을 설치해서 적을 막는 데 유리하게 하였다. 흥인지문의 문루는 구조의 맞춤은 간단하고 장식이 많은 19세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했다. 또 흥인지문의 적을 막기 위한 반달 모양의 옹성(饔城)을 둘렀는데, 이는 서울 성문 가운데 유일하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을 이용할 수 있는 동대문역이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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