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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불효시대 / 장광규(張光圭)

by 청심(靑心) 2005. 9. 21.

 

옛날부터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곳을 떠나 도시로 왔다. 그리고는 그곳이 좋은 곳이었음을 늦게나마 느낀다. 그곳이 고향이다. 고향 내음이 나는 시골 풍경을 TV 화면으로 보거나 명절 때 잠깐씩 보면 참으로 좋다. 객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명절 때면 모여드는 곳이 고향이기도 하다.

떠나와 살고는 있어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뒷산 골짜기며 괴상한 바위 이름도
생각나고 학교 가는 길이랑 읍내 가는 길도 눈에 선하다. 아무튼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사계절 말고도 한 계절을 더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고 있다. 명절 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픔이 그것이리라. 몇 달 전부터 예매하는 귀성표가 하루아침에 다 팔려나가고 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고향은 무엇일까? 우리를 낳아 준 부모님이 사시는 곳, 그리고 우리가 태어난 곳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아버지께서 생활했던 곳이다. 고향을 잊지 않고 생각하며 찾아가는 것은 효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추석과 설날이 되면 민족의 대이동이라며 도로가 온통 주차장으로 변한다. 평소 서너 시간 걸리는 거리를 하루
꼬박 걸려 가면서도 명절이 되면 다시 찾아가는 사람들. 명절 때 고향 가는 길은 지루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길이 되기도 한다. 더러는 명절 때 고향 가기를 포기하고 휴가 때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미리 성묘를 다녀오거나 차례를 지내고 명절 때는 관광지로 떠나는 사람도 있단다. 그뿐인가. 자식이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부모님이 자식들이 있는 객지로 찾아와 명절을 보내는 풍속도가 늘어나고 있다. 생일도 칠순잔치도 날을 받아 차리는 것은 예삿일이 된 지 이미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가.

명절이라며 고향에선 큰아들, 작은아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른들이 계신다. 다른 집
자식들은 잘도 오고 잘도 가는데 왜 우리 집 자식들은 이렇게 못 오는 걸까. 차 소리가 들리면 느린 걸음을 재촉하며 동구 밖을 나가보곤 하지만 아들 녀석들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싱싱한 횟감이랑 푸짐한 음식을 장만하고 명절을 보내면서 "아버님이세요? 얘들이 힘들어하고 아범도 회사일이
바빠 못 내려가게 되어 죄송합니다. 읍내 나가시면 고기라도 사다 드시라고 용돈 조금 보냈습니다. 다음 명절에는 꼭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명절 잘 보내시고 안녕히 계십시오."라며 한 통의 전화를 한다. 명절인데 못 내려가게 되면 전화로 간단히 인사를 해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인데 이걸 그 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1995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