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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고향 / 장광규(張光圭)

by 청심(靑心) 2005. 9. 21.

 

기차역 부근에서 보따리를 들고 오가는 인파를 보면 금방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고향이다. 흙 내음 풀 내음에도 정을 느끼고,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여유를 갖고 생활해가는 곳. 그곳이 어머니의 포근한 품과도 같은 고향이다.

평소에는 다섯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명절 때는 시간을 종잡을 수가 없고 열 시간이 넘게 시달리며 달려가야
하는 것이 귀향길이기도 하다. 시내에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이야기로 유명한 광한루원이 있는데, 그곳 연못에는 큼직한 잉어들이 떼를 지어 관광객을 반겨준다. 또한 지리산이 가까이에 있어 등산객이 많이 모여드는 교통이 좋은 곳이 남원이기도 하다.

광한루원에서 광주로 가는 국도를 6Km쯤 가다 이정표를 따라 서쪽으로 들어가면 88 고속도로가 가로질러 나 있고, 저
멀리 마을 뒷산이 보이는데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다. 큰 산이 있어서 대산면이라 했다 한다. 돌과 풀이 많아 '석갓'이라 부르던 곳을 집도 고치고 길도 넓히며 새롭게 동네를 꾸미게 되면서 신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전형적인 농촌으로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가고 오직 노인들만 집을 지키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줄만큼 동네가 너무나 조용하다. 고향 하면 '돌담', '돌담'하면 고향이 생각날 정도로 집과 집 사이에 쌓아놓은 돌담에도 친근감이 든다. 돌담에는 호박넝쿨이 열매를 맺은 채 이리저리 뻗어가고 있다. 잘 그려놓은 그림을 보듯 집안에는 감나무도 서 있고, 밭가에 밤나무도 보이고 동네 가운데로 흐르는 맑은 냇물에는 송사리 미꾸라지 가재가 살고 있어 자연과 가깝게 지내고 있음을 실감한다.

남에서 북으로 길게 뻗은 해발 604m의 뒷산은 풍악산이라고 부르는데, 옛사람들은 이산을 큰 산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고, 칡 아그배 돌배 산 도토리 도라지가 자라기도 한다. 가을엔 송이버섯이 많이 나기도 해 송이버섯 채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턱에는 큰 바위에 새긴 부처상이 빈 절터만 지키고 있는데, 북쪽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봄가을 소풍 때면 찾아오는 지정 코스이기도 했다.

산골짜기마다 산봉우리마다 부르는 이름이 있고, 큰 바위나 괴상하게 생긴 바위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와
이름이 있다. 숲 속을 거쳐 마을로 흐르는 물은 간이상수도를 설치하여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높고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멀리 그 너머에도 산으로만 되어있을 것만 같은 산골동네지만
명절이면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만나만 보아도 기분이 좋고 쳐다만 보아도 마음이 통하는 고향사람들. 고향을 떠나 살다가도 명절에 만나게 되면 반가워 서로 안부를 물어보며 할 이야기가 많기만 하다.

어릴 적 수박서리 복숭아서리 닭서리도 하며 개구쟁이로 놀던 추억도 떠오른다. 커다란 저수지가 두 개나 있어 학교
갔다 와서는 더위를 식힌다며 수영을 하기도 했다, 마을 냇가에서 발가벗고 물장구치며 멱을 감던 동무들은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제는 마을 앞뒤로 큰길이 뚫리고 농로까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버렸다. 시내버스가 시간마다 들락거리고 택시도 집안까지 들어가는 곳으로 발전했다. 그렇지만 이십 리 장터를 가던 어린 날의 추억이 떠오르는 살아 숨 쉬는 고향이기에 포근함을 느낀다. 계절을 피부로 느끼며 걷던 그 길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걸어보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쩌다 명절 때면 한 번씩 내려가는 고향. 차량으로 인해 길이 막히고 막히는 고향 가기. 그러나 모든 그리움이 머무는
곳이기에 평소보다 두서너 배 걸려 고향에 가는 고생을 하여도,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고향은 마중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토라져 돌아서지도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겨줄 뿐이다.

                                                             1989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