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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그 여름은 갔어도 / 장광규(張光圭)

by 청심(靑心) 2005. 9. 21.

 

휴가철이다.
휴가철이면 잊히지 않는 아주 오래된 추억 하나가 있다. 시골서 자란 촌놈이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그때는 가정방문을 하면서 책을 판매하고, 직접 책도 배달하고 수금도 하는 출판사가 많았다. 그런 회사에 다니게 되었는데 여름휴가를 얻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해 여름도 무척이나 무덥던 팔월 초순이었나 보다. 삼 일간의 휴가가 시작되었으나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고향을 다녀오기로 했다. 같이 가게 될 일행도 없고 고향역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심심하고 지루할 것 같아 신문과 주간지를 사 들고 영등포역을 찾아 아침 일찍 열차에 오르게 되었다.

더운 날씨지만 조금은 들뜬 기분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른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향에는 농사일
거드시느라 검게 그을린 얼굴에 꼬부라진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시는 어머니가 계신다. 객지에서 혼자 자취 생활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냐며 맨발로 뛰어나오실 어머니를 그리며 마음은 벌써 고향집 대문 앞에 서 있는데 열차가 갑자기 천천히 달리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밖을 내다보니 서대전역을 조금 지난 지점이었고 서울서 떠날 때는 맑은 날씨였는데 이곳은 비가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서대전 역과 신탄진역 사이에 다리가 하나 있는데 열차가 이 다리 가까이 접근했다가는 후진하고 다시 접근했다 후진하기를 몇 차례 거듭하다가 서대전역에 아예 정차해버렸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내린 큰비로 인해 안전운행상 이 다리를 통과할 수 없으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안내방송을 들은 후에야 궁금증이 풀렸다.

할 수 없이 열차에서 내려 승객들을 따라가 나머지 구간요금을 환불받고 버스 편을 이용하려고 대합실을 나서는데
어느 할아버지 한 분이 뒤에서 부른다. "여보, 젊은이 어디까지 가나?" "예, 저는 남원까지 갑니다" "그럼 잘됐네, 나는 정읍(정주)까지 가는데 차를 탈 수 있도록 좀 도와주지 않겠나?"

남원과 정읍을 가기 위해서는 전주행 버스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갈아타면 되므로 같이 동행해 주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함께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보았으나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초만원이었고, 통금시간이 있던 때인데 휴가철까지 겹쳐 막차 표까지 매진된 뒤였다. 그래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 보았으나 그곳에서도 차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담배연기도 싫지만 그때는 담배도 많이 피웠다. 담배를 피우려고 한쪽으로 가면 민망스럽게도 따라(?) 다니시던
그 할아버지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중국음식점에 들어섰을 때는 세 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다시 고속터미널로 가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정상적으로 열차를 타고 갔더라면 지금쯤 광한루원에 있는「월매집」에서 동동주라도 한 사발 마시고 있을 시각에 이게 웬 꼴이람? 생각하니 온몸에 기운이 쭉 빠져버린다. 끈질기게 기다린 보람으로 여섯 시 반에 출발하는 반납 표 한 장을 겨우 구해가지고 할아버지를 태워드린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나는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내려가는 차편이 없어 서울로 되돌아갈까 망설이다가 주머니 속의 휴가비며 용돈까지 다 지불하다시피 해서 택시를 타고 고향에 갈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기분까지 잡쳐버린 휴가 첫날은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가 버렸던 것이다. 그 여름은 갔어도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웃음이 나온다.

                                                             1986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