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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心의 詩494

오늘도 붓을 든다 / 장광규 오늘도 붓을 든다 靑心 장광규 말을 하되 짧게 하고 또한 신중하게 하는 것은 진정으로 말을 사랑하는 수줍음수줍음을 타는 사람은 입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붓으로 나타내는 것을 좋아한다 봄날 푸른 새싹이 땅을 밀치고 순한 자태로 인사하면 기쁘듯 구름 뒤에서 숨 고르기 하는 해가 나오기를 기다리듯 그리움이 밀려올 때 안부가 궁금할 때 간결한 모습참신한 얼굴을 만나면 반갑다 가까이 다가와 웃어주는 반짝이는 눈동자와 대화하기 위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마음에 담아 글을 쓰며 다듬는 즐거움이 있다 2019. 2. 7.
설 / 장광규 설                                 靑心 장광규 설이다모질게도 춥던 섣달이 가고 새해가 온다고 '설'이라 했다 새롭고 낯설게 다가오는 나날들 매사에 신중하라고 설이라 했다  물같이 흐르는 세월 나이 먹는 게 서러워 설이라 했다 해가 바뀌어도 가진 것 없어 너무 초라해 설이라 했다 가족과 떨어져 객지에서 살아야 하는 외로움에 설이라 했다  결혼 못한 노총각 노처녀 해를 넘김이 아쉬워 설이라 했다 떡국 끓이는 소리가 설설 나고 맛있는 떡도 장만한다고 설이라 했다 준비해 두었던 때때옷을 꺼내 입는다고 설이라 했다  눈은 풍년이 들고 인심도 좋게 하는 것 눈이 내리기를 바라며 설이라 했다 행복한 삶을 향하여희망찬 한 해를 시작하며 음력 정월 초하루를 설이라 한다 2019. 1. 31.
물은 살아 있다 / 장광규 물은 살아 있다                               靑心 장광규 물은 아주 작은 것이다 씨도 열매도 없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고 밀가루처럼 부드럽기도 해 무서워 멀리 피할 이유도 없고 두려워 숨을 필요도 없다 본디 작고 연약하지만 손에 손을 잡고 모여 개울을 만들고 강을 이루고 흘러가 바다에서 출렁거린다 평소엔 한없이 순하지만 기온이 내려가 추위를 느끼면 없는 힘 있는 힘 다 모아 하얀 얼굴로 무장하고 몸은 더욱 강해진다 서로 어깨와 어깨를 가슴과 가슴을 얼싸안아 억세고 끈끈한 포옹을 한다 얼마나 세게 끌어안은 지 떨어지지 않는 하나의 덩어리 얼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은 차갑고 냉정한 표정 돌처럼 무심한 단단함도 남녘에서 봄바람이 .. 2019. 1. 23.
애물단지 / 장광규 애물단지                                             靑心 장광규 경주에 있는 다보탑을 품에 안고 주화로 태어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십 원짜리 동전 몸값의 서너 곱절은 더 먹어야 햇빛을 보게 되지만 탄생의 기쁨은 잠시뿐 서랍 속 깊숙이 누워있거나 겨울철 난로 위에서 몸을 달구며 서러움을 겪는 신세 이곳저곳 여행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가끔은 할 일이 있기에 이름을 지워버릴 수도 없는 나는 애물단지 2019. 1. 17.
달력 / 장광규 달력                              靑心 장광규 벽에서 일생을 보내는 달력제자리에 모시기 전에 얼굴을 살피는 통과의례가 있다  양력으로 또는 음력으로 명절은 언제인지 짚어보고 생각나는 절기도 찾아보고 삼복더위의 시작과 끝은 어디쯤인지 연휴는 어떻게 들어있는지 기억해야 할 날짜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하며 일 년을 미리 살아본다  동이 트면서 하루가 열리고 어두워지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반복과 변화의 공존 속에서 달력을 보며 달력을 넘기며 달력을 뜯으며 세월이 간다 2018. 12. 7.
바위 / 장광규 바위                          靑心 장광규 새들이 노래하는 산속에서 물소리 시원한 냇가에서 혹은 동네 어귀에서 자연 그대로 숨 쉬며 쏟아지는 빗물로 목욕하고 눈 내리면 하얀 옷 입어도 보며 알맹이 있는 몸짓으로 너는 너를 보여준다  하늘이 파랗게 웃는 날도 바람 불어 추운 날도 움직일 줄 몰라 멋을 모르지만 이끼 낀 모습에는 부드러움이 있다  더러는 자꾸 귀찮게 해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놓지만 변할 줄 모르는 묵직함으로 겉도 속도 매한가지 단단함으로 너는 네 자리에 다시 선다 2018. 11. 10.
단풍잎 / 장광규 단풍잎 靑心 장광규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에도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도발걸음 멈춘 시선에도긴장하거나 표정 관리할 필요가 없다이른 봄 태어나 일생을 살며시나브로 쌓은 흔적을고스란히 간직하면 된다 모양새를 가다듬지 않아도 좋다거울을 보며 화장하지 않아도 된다있는 대로 생긴 그대로가 생명이다닮은 듯 닮지 않은 모습제각기 개성을 지닌 얼굴들그게 바로 아름다움이다조화로운 어울림은 그림이고정다운 속삭임은 노래가 되고흥겨운 웃음은 꽃이 된다 2018. 10. 31.
가을 / 장광규 가을                     靑心 장광규 하늘을 봅니다 커다란 거울입니다 나의 움직임이 보입니다 나의 마음까지 보입니다 몸도 마음도 더 푸르게 더 맑게 더 바르게 그리고 더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2018. 9. 19.
목련꽃 / 장광규 목련꽃                           靑心 장광규 반가운 소식 듬뿍 안고 잎보다 먼저 피는 꽃 어느 꽃인들 여성스러움이 없으랴마는 설렘을 간직하고 결혼식장에 선 신부를 닮은 꽃 하늘을 향해 이렇게 정갈하다고 이만큼 순진하다고 가슴을 열어 마음을 보여준다 따스한 보살핌으로 예쁘게 태어나 고맙다며 두 손 모으고 인사한다 흠집 하나 없는 하얗고 고운 얼굴로 보여주는 밝은 웃음 부드러운 몸짓으로 흐뭇한 기쁨을 준다 가벼운 바람 속에 기분 좋은 향기가 난다 2018.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