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는 心이다495 속셈 / 장광규 속셈 靑心 장광규 물건을 권하며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서로 쳐다보며 흥정을 하며 파는 사람 하나라도 더 팔려고 손님에게 웃는 얼굴이고 사는 사람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상인에게 미소 보내고 2017. 8. 31. 시 쓰는 일 / 장광규 시 쓰는 일 靑心 장광규 생김새도 길이도 굵기도 가지각색의 나무들 이리 보고 저리 보며 골라 껍질 벗겨내고 길이는 자로 재고 톱으로 자르면서 먹줄 놓아 도끼로 깎아내고 대패로 곱게 밀어 제자리 찾아 맞추며 목수는 집을 짓네 시 쓰는 일은 집 짓는 일하고 비슷한 것 이 낱말 저 낱말 찾아내 여러 번 고치고 다듬으며 매끄러운 문장으로 탄생시키는 고통이라네 2017. 8. 19. 풍경 2017 / 장광규 풍경 2017 靑心 장광규 100년 만의 기록적인 가뭄에 여름마저 일찍 왔다 엄청난 비를 몰고 온 장마 고통스러운 찜통더위 잠 못 이루는 열대야 사람들이 생각했다 손선풍기를 거리에서 지하철 안에서 손에 든 선풍기로 얼굴 가까이 갖다 대기도 하고 몸 이곳저곳 더위를 식힌다 2017. 8. 9. 매미 소리를 들으며 / 장광규 매미 소리를 들으며 靑心 장광규 여름에는 매미 소리가 있다 매미가 운다고 말들을 하지만 순전히 우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엔 덥다고 목청껏 소리 내어 울지만 나뭇잎이 나부끼는 아침저녁으론 기분이 좋아 노래하는 것이다 시끄러운 울음소리로 들리기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리기도 하는 매미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고향 뒷들 원두막에서 수박을 먹는 소년이 된다 2017. 8. 2. 적응 / 장광규 적응 靑心 장광규 태양이 뜨거운 계절에는 밖으로 나가 더위를 반기렵니다 내리쬐는 햇빛에 땀을 흘리고 햇빛으로 땀을 말리는 구릿빛 피부가 좋아 아버지 모습을 닮으렵니다 하루해가 길어 무더운 날은 그늘만 찾지 않고 여름을 느끼렵니다 그러다 견디기 힘들면 등목하고 부채를 챙기며 성급함을 멀리 보내는 어머니 마음을 배우렵니다 2017. 7. 30. 열대야 / 장광규 열대야 靑心 장광규 장대비에도 꺾이지 않고 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덤으로 따라온 불쾌지수는 내다 버릴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이 괴롭힌다 아침부터 돌고 있는 선풍기는 헉헉거리며 마른기침을 하고 최신 성능 자랑하는 에어컨도 더운지 땀을 바가지로 흘린다 더위는 방안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근린공원으로 나가 열대야 수그러드나 살피다 온다 짧은 여름밤이 길게만 느껴지고 뒤척거리다 지쳐 잠이 들지만 자꾸만 흔들어 깨우는 찜통더위 낮에 본 분수대의 시원한 물줄기가 생각나고 얼음과자를 입에 물고 사는 아이들은 꿈속에서도 청량음료를 마신다 2017. 7. 23. 윤달 / 장광규 윤달 靑心 장광규 일 년은 열두 달한 달이 더 있으니 공달이라고 불러도 좋다 이달은 그냥 쉬면서 지낼까 어른들 수의나 장만할까 고개 너머 조상의 산소 요리조리 살펴보고 사초를 할까 그곳이 안 좋으면 다른 곳으로 모실까 잠든 흙을 편안하게 손질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자리 미리 마련해놓기도 하는 달 그런 풍습이 있는 탈 없기를 바라는 달 무던한 달 우울한 달 2017. 7. 19. 여름 목마름 / 장광규 여름 목마름 靑心 장광규 목이 마르다 생수를 사다 마셔도 끓인 물을 먹어도 갈증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날씨가 무덥다 무더위는 옷을 자꾸 벗기려 하고 더러는 바닷가로 가서 벗기도 하고 거리에도 거의 다 벗은 모습으로 목마름은 더욱 심각하다 햇볕은 화가 났다 아스팔트를 녹이고 찜통더위로 사람을 녹이려다 피서 못 가는 피부를 그을린다 비가 내린다 비는 더위를 식혀주고 몸도 식힐 수 있어 좋다 내린 비는 약수가 되어 목의 갈증은 해결되지만 사랑의 갈증은 그래도 남는다 한 번쯤 멀리 떠나야 했기에 뒷전에 밀려나 외로웠던 사람들 이제 돌아와 사랑하며 목마름을 풀 시간이다 2017. 7. 15. 장맛비 / 장광규 장맛비 靑心 장광규 날마다 비가 내려도 짜증 부리지 마라 아침마다 우산을 챙겨야 한다고 귀찮아하지 마라 뜨거운 나라 베트남에는 일 년 중 반년은 우기로 비가 내린다 오랫동안 전쟁을 할 때에도 논밭에는 온갖 곡식이 자라고 들판에는 과일이 풍성하게 열렸다 아프리카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며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림과 질병에 허덕이고 있다 비는 번영과 축복의 근원 새벽에 찾아오더라도 바짓가랑이가 젖더라도 오는 비를 반갑게 맞으며 물을 소중하게 여길 일이다 2017. 7. 2.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5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