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여!
靑心 장광규
2008년 2월 11일 새벽
그대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모형을 만들어 불태우는
사극의 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어리석은 노인이
그대의 몸에 방화를 한 것입니다
허무하다고 어이없다고
말하기 조차 부끄럽습니다
600여 년 살아온 그대를
하루아침에 잃고 말았습니다
허공을 바라보다 정신을 가다듬고
가만히 그대를 불러봅니다
그대는
뜨거운 불에 시달렸습니다
차디찬 물에 젖어 쓰러졌습니다
국민의 무관심에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초라한 국민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사라졌습니다
자존심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대는
위엄 있고 인자한 할아버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대 곁을 오고 가며
든든하고 흐뭇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웅장한 모습 꼿꼿한 기상을
어찌하여 포기해버리셨습니까
왜 잘못한다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러면 안 된다 미리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못난 사람들이 가끔 찾아와 밤잠도 자고
그대를 귀찮게 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그대를 복원한다고 합니다
그건 숭례문이 아닙니다
국보 1호가 아닙니다
모조품일 뿐입니다
이젠 그대를 볼 수 없습니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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