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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기에 / 장광규(張光圭) 책을 가까이하는 편은 아니지만 책을 펴 들면 졸음이 온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성미 탓인지는 몰라도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다. 신문은 가까이하는 편인데 오래된 것을 읽으면 재미가 있더라. 얼마 전, 사내 도서실 문을 두드리고 한 권을 빌려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내가 모르고 있는 시인의 작품세계는 어떤 것일까? 무엇이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에 차있었기 때문이다. 총 3권으로 되어 있는 시집인데, 제1권 「민들레의 영토」였다. 몇 페이지를 읽어본 나는 실망을 했다. 시인이 쓴 글이 초등학생이 쓴 글처럼 너무나 정직하고 맑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졸음이 온다. 그만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기왕 가져왔으니 끝까지 읽어 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갔다. 처음과는 달리 .. 2005. 9. 21.
잔치 / 장광규(張光圭) 새로운 풍속도가 되어버린 게 있다. 결혼 피로연이거나 회갑 잔치 거나 막론하고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을 음식점에 맡겨버리는 것이다. 간편하긴 해도 정감이 흐르지 않는다. 옛날에는 결혼식이나 회갑잔치는 물론 애사를 당했을 때에도 집안에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 손님 접대를 했던 것이다. 길일을 택해 잔칫날을 정하고, 잔칫날이 정해지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온갖 음식을 차근차근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술도 담그고 콩나물도 기르고 도토리 혹은 메밀묵도 만든다. 돼지도 먹이를 잘 줘 살이 찌도록 거둔다. 싱싱하고 신선한 과일도 준비하고 시장에서 생선도 사 온다. 그리고 일가친척과 동네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준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우리 집 둘째 아들이 장가드니까 오라고 기별을 해둔다. 잔칫날이 되면 일가친척과 동네 .. 2005. 9. 21.
쌀 / 장광규(張光圭) 쌀이 생활의 기준이었다. 성인 남성의 하루 품삯은 한 되었다. 특별한 기능이 있어야 하는 일이거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두 되었다. 여성과 성인이 안된 남성의 품삯은 반 되었다. 논과 밭을 매매하거나 가옥을 사고팔 때도 쌀로 계산한다. 몇 가마니짜리 논, 몇 가마니짜리 집으로 통했다. 논이 많으면 부자였고 부잣집은 쌀이 많았다. 쌀을 가지고 시장에 가면 의복도 살 수 있고 음식도 살 수 있다. 쌀이 많아야 상급학교도 갈 수 있었다. 혼수 장만도 쌀이 많으면 넉넉하게 할 수 있었다. 쌀이 사람을 만든 시절이 있었다. 쌀의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래서 이제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질은 반대로 떨어진 상태다. 품종 개발, 농약의 다량 살포, 화학비료의 과다사용, 토양의 산성화, .. 2005. 9. 21.
두고 온 산촌 / 장광규(張光圭) 학교 가는 아이들의 나이에 별로 신경을 안 쓰던 때, 다섯 살에 입학한 형이 너무 어린 탓에 공부도 못하고 학교에 안 가려고 한다며 나에겐 아홉 살쯤 되어서 초등학교에 다니라는 걸, 여덟 살 되던 해 꼭꼭 숨겨둔 옷을 챙겨 입고 혼자서 입학식에 가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수십 년이 지나가버렸다. 면사무소가 있고 파출소가 있는 소재지에 전교생이 오백여 명인 시골학교는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건물은 일본식으로 어버이들이 다닐 때는 사학년까지만 있었고 나머지 학년은 읍내로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향으로 지어진 교실 앞에는 벚꽃나무 네 그루가 고목이 되어 버티고 서 있었다. 일학년에 입학한 학생의 나이가 열 살이 훨씬 넘는 아이도 있었고 월반이라고 해서 한 해 동안에 일학년에서 이학년이 되기도 .. 2005. 9. 21.
'오포'라 불렀던 사이렌 / 장광규(張光圭) 높고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 고개를 넘어 논길을 따라 한참을 가노라면 면사무소가 나온다. 그 옆에는 지서가 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학교가 있다. 그런데 학교를 오가면서 지서 앞에 있는 사이렌이 신기해 쳐다보곤 했다. 면사무소와 지서 앞 길가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중간중간에 크나큰 팽나무도 몇 그루 있었다. 넓은 공터였는데 그중 한 곳에 사이렌이 있었다. 나무 중간쯤 여러 갈래로 뻗은 가지 위에 사이렌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사다리를 설치해 놓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이렌을 울리게 되어있었다. 이 사이렌은 주로 낮 12시에 시간을 알려줄 목적으로 설치해 놓았던 것이다. 시계가 귀하던 때라 사.. 2005. 9. 21.
고향 / 장광규(張光圭) 기차역 부근에서 보따리를 들고 오가는 인파를 보면 금방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고향이다. 흙 내음 풀 내음에도 정을 느끼고,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여유를 갖고 생활해가는 곳. 그곳이 어머니의 포근한 품과도 같은 고향이다. 평소에는 다섯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명절 때는 시간을 종잡을 수가 없고 열 시간이 넘게 시달리며 달려가야 하는 것이 귀향길이기도 하다. 시내에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이야기로 유명한 광한루원이 있는데, 그곳 연못에는 큼직한 잉어들이 떼를 지어 관광객을 반겨준다. 또한 지리산이 가까이에 있어 등산객이 많이 모여드는 교통이 좋은 곳이 남원이기도 하다. 광한루원에서 광주로 가는 국도를 6Km쯤 가다 이정표를 따라 서쪽으로 들어가면 88 고속도로가 가로질러 나 있고, 저 멀리 마을.. 2005. 9. 21.
불효시대 / 장광규(張光圭) 옛날부터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곳을 떠나 도시로 왔다. 그리고는 그곳이 좋은 곳이었음을 늦게나마 느낀다. 그곳이 고향이다. 고향 내음이 나는 시골 풍경을 TV 화면으로 보거나 명절 때 잠깐씩 보면 참으로 좋다. 객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명절 때면 모여드는 곳이 고향이기도 하다. 떠나와 살고는 있어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뒷산 골짜기며 괴상한 바위 이름도 생각나고 학교 가는 길이랑 읍내 가는 길도 눈에 선하다. 아무튼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사계절 말고도 한 계절을 더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고 있다. 명절 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픔이 그것이리라. 몇 달 전부터 예매하는 귀성표가 하루아침에.. 2005. 9. 21.
그 여름은 갔어도 / 장광규(張光圭) 휴가철이다. 휴가철이면 잊히지 않는 아주 오래된 추억 하나가 있다. 시골서 자란 촌놈이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그때는 가정방문을 하면서 책을 판매하고, 직접 책도 배달하고 수금도 하는 출판사가 많았다. 그런 회사에 다니게 되었는데 여름휴가를 얻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해 여름도 무척이나 무덥던 팔월 초순이었나 보다. 삼 일간의 휴가가 시작되었으나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고향을 다녀오기로 했다. 같이 가게 될 일행도 없고 고향역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심심하고 지루할 것 같아 신문과 주간지를 사 들고 영등포역을 찾아 아침 일찍 열차에 오르게 되었다. 더운 날씨지만 조금은 들뜬 기분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른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향에는 농사일 거드시느라 .. 2005. 9. 21.
하나를 꿈꾸며 / 장광규(張光圭) 1978년 1월 10일 남원에서 결혼식을 올리다. 2005.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