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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심(心)이다103

시집에서(78) / 장광규 계절의 느낌 靑心 장광규 억지로 만든 바람이 아닌 활동하기에 알맞은 산들바람이 가까이 있기에 가을을 좋아한다 우중충한 날씨보다는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파란 하늘이 있기에 가을은 좋은 계절이다 가진 건 넉넉하지 못할지라도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황금빛 넘실대는 들녘이 있기에 가을이 좋다 젊음이 있을 때에는 꼼짝 안하고 잠자던 대지에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에서 희망을 가꾸어 나갈 수 있으니까 봄을 좋아한다 연하디연한 새순이 나무에 돋아나는 걸 보며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봄은 좋은 계절이다 꽃은 여기저기 피어나고 나비는 춤추며 모여들어 천지가 잔치 분위기라 봄이 좋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2023. 12. 17.
시집에서(77) / 장광규 마음 여행 靑心 장광규 언제부턴가 물질적으로는 다소 풍요로워졌지만 자연은 그대로가 아니고 계절마저 감각을 무디게 해 정신적 빈곤은 오히려 심각해졌다 필요한 물건 빌려주고 빌려 쓰며 이웃은 다정한 사촌이었고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진리를 허물어 보려는 엉뚱한 사람 없었고 누가 보아도 누가 안 보아도 지킬 건 지키는 떳떳함이며 요란함보다는 차분함이 있었던 그날 그때가 생각난다 향기로 피어나는 꽃이 보고 싶어 새들의 흥겨운 속삭임이 듣고 싶어 사람들의 소박한 웃음소리가 그리워 그 시절을 찾아간다 산이 산이기를 바라며 물이 물이기를 바라며 삶이 삶이기를 바라며 2023. 12. 10.
시집에서(76) / 장광규 자유로운 욕심 靑心 장광규 집이 작게 느껴진다면 방이 비좁아 불편을 겪는다면 이제 그만 훌훌 털어버리세 돈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저 허공이 있지 않은가 거기에다 집을 지어 보세 면적을 넓게 잡고 좋은 재료를 써서 큼지막하게 원 없이 좋은 집을 만들어 보세 푸른 숲을 갖고 싶으면 집 옆에 정원을 만들어 나무와 풀도 가꾸어 보세 논을 만들고 싶으면 밭도 있어야 한다면 저 넓은 곳에다 논이며 밭을 일구어 벼도 심고 과일나무도 이것저것 심어 보세 공장이 필요하면 그래 공장도 세워 보세 커다랗게 건물을 만들어 종업원도 많이 뽑아 기계가 잘 돌아가게 함께 힘을 모아 날마다 열심히 일해 보세 있는 욕심 없는 욕심 한번 마음껏 펼쳐 보세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저 무한한 공중에다 말일세 2023. 11. 25.
시집에서(75) / 장광규 사랑이었네 靑心 장광규 아주 오래된 추억 하나 지워지지 않고 아침 해처럼 떠오르네 스쳐 지나간 낯선 사람이 아닌 이름도 얼굴도 그대로 간직하고 혼자만 애태우며 사랑한 사람이 있었네 산이 많고 물이 맑고 농사를 지으며 순박하게 살아가는 동네 봄이면 진달래꽃으로 그녀가 다가오고 가을이면 소나무 향기 퍼져 더욱 그리워하고 겨울이면 하얀 눈으로 마음 설레게 한 사람 그렇게 좋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마음으로 마음으로만 사랑하였네 포근한 자연의 품을 떠나 시끄럽고 복잡한 곳으로 왔지만 봄이면 꽃 향기에 그녀를 생각하고 단풍을 보면 아름다운 편지를 쓰고 싶고 하얀 눈이 내리면 순진한 사랑을 전하고 싶은 아름다운 소녀로 언제까지나 남아있네 그 소녀를 사랑하는 소년으로 살아가네 2023. 11. 19.
시집에서(74) / 장광규 초록은 연속이다 靑心 장광규 처음 찾아오는 초록은 수줍은 듯 웃으며 인사하지 어리고 순한 생김새 싫어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착하고 연약한 모습이지 온 세상이 새롭게 펼쳐지며 흥겹고 따스한 일상이지 자고 나면 조금씩 자라며 푸른 얼굴이 되어가지 씩씩하고 활기가 넘치니까 주변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스스로도 기세가 당당하지 언제까지나 푸름이 유지되고 인기가 있을 것만 같지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아 젊음을 시기하는 무더위와 시간의 흐름을 버티지 못해 강한 마음이 차츰 약해지기도 하지 더러는 노랑으로 또는 갈색으로 말없이 물들어 가지 듣기 좋게 아름답다 말하지만 윤기 잃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허무함을 속으로 삭이지 드디어 바람이 불어대면 춥다거나 떨린다는 소리 못하고 우수수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하지 입.. 2023. 11. 11.
시집에서(73) / 장광규 좋은 세상 靑心 장광규 세상 참 많이 변했지 그럼 많이 변하고 있지 어쩌다 대머리를 보면 품위 있는 높은 양반으로 보이고 배 나온 사람을 만나면 잘 먹고 잘 사는 사장님으로 생각했지 꽁보리밥에 된장국 먹으며 흰쌀밥 배부르게 먹고 싶었지 시래깃국도 맛있고 수제비 칼국수는 고급이었지 형 옷 언니 옷 물려 입으며 새 옷 좋은 옷 입고 싶었지 새로 사 온 옷 명절에 꺼내 입으며 아끼고 또 아꼈지 머리카락 빠진 사람 많아져 아닌 체 가발을 쓰고 배 나온 사람 늘어나면서 너나 나나 건강에 적신호 살찐 게 나쁘다며 에어로빅이며 걷기 운동도 하고 수영장에서 찜질방에서 체중 조절하느라 땀 흘리네 삼겹살에 통닭 마구 먹어대고 햄버거며 피자 좋아하다가 희한한 병 무서운 병 생겨나니 싫어하던 보리밥에 상추쌈 찾고 잡곡밥에 청.. 2023. 11. 5.
시집에서(72) / 장광규 추억은 靑心 장광규 파란 가을 하늘 속에는 만국기 펄럭이는 학교 운동회 단풍 든 산으로 소풍 가는 모습 코스모스 핀 등굣길이 환히 보인다 기온이 오르며 땀이 날 때는 손때 묻은 부채가 생각난다 선풍기 대신 무더위를 쫓던 여름날의 부채 바람을 잊을 수 없다 머리 아파 배 아파 약국 갈 때면 내 손이 약손이다 만지기만 해도 아픈 곳이 거짓말처럼 없어지던 어머니 손길이 그리워진다 시장 모퉁이에서 뻥튀기 소리가 나면 뜨겁디뜨거운 나라 베트남에서 총소리 대포 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이에 있는 커피공장에서 바람 부는 날 커피 향 날아오면 두메산골 고향집 부엌에서 끓이는 구수한 숭늉 냄새가 코에 스민다 늙지도 젊지도 않고 더도덜도 아닌 그때 그대로의 추억은 어디서 찾아오는 것일까? 추억은 마음속에 살고 있다가 눈으로 귀.. 2023. 10. 15.
시집에서(71) / 장광규 날씨와 함께 靑心 장광규 최신 장비 설치했는지 기상정보 거침없이 나오네 오늘은 전국적으로 흐리고 내일은 대체로 맑겠다 전파를 타고 울려 퍼지네 잘한다 잘한다 제풀에 신나 장기예보까지 하는데 가끔은 엉뚱한 날씨를 보이네 무더위에 태풍에 강추위에 기상이변은 큰 재앙이고 빗나가는 오보는 큰 실망을 주네 먼데 소리 가까이 들리면 달무리가 서면 개미가 줄을 서서 이사하면 길에서 아이들이 떠들어대면 할아버지 허리가 쑤시고 아프면 어김없이 흐려져 비가 오고 두꺼비가 엉금엉금 기어 나오면 신기하게도 많은 비가 내리고 서쪽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비가 뚝 그치던 그때가 행복했네 겨울바람이 잠잠해지면 펄펄 눈이 내려 좋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 2023. 10. 8.
시집에서(70) / 장광규 거울 앞에서 靑心 장광규 거울 밖에서 거울 안으로 가만히 눈길을 보낸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낯익은 누군가가 떠오른다 외롭고 보고플 때 언제라도 달려가 품에 안기면 따뜻하게 반겨줄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다 나의 생김새에서 나의 움직임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둥근 얼굴이며 넓은 이마 크지 않은 귀에 두툼한 입술 웃으면 작아지는 눈까지 세월이 흐를수록 자꾸 어머니 아버지를 닮아간다 거울은 영원한 세상 거울 앞에 서면 진실을 느낀다 2023.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