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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심(心)이다104

시집에서(52) / 장광규 욕심 靑心 장광규 모래알처럼 작은 욕심이 싹트기 시작하면 탁구공만 하고 야구공만 하다가 축구공으로 변하고 어느 사이 허공을 향해 무한정 커간다 바람으로 바람으로만 채우다 허무하게 터지는 풍선 같은 쓸모없는 쭉정이 욕심은 싫어 작지만 단단한 실속 있는 알맹이가 좋아 참다운 욕심을 간직하고 싶다 2022. 11. 16.
시집에서(51) / 장광규 열쇠 靑心 장광규 좀 나긋나긋하면 좋으련만 붙임성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거나 핸드백에 갇혀 엉성하고 딱딱한 모습으로 사람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는 신세다 날마다 챙겨야 하는 조금은 귀찮은 존재 평소에는 관심 밖의 물건이지만 차를 움직이거나 집안에 들어가려면 익숙한 손놀림에 이끌려 낯익은 얼굴과 다정히 눈 맞춤하고 헛수고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군말 없이 행동하는 동반자가 된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거나 실수로 잃어버리면 쩔쩔매며 황금처럼 귀하게 여기지만 한두 번 혼이 난 후에는 쌍둥이를 만들어 가지고 다닌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큰 일을 하는 일꾼 생김새는 작지만 지칠 줄 모르며 제 갈 길을 야무지게 가고 있다 2022. 11. 9.
시집에서(50) / 장광규 좋은 시절 靑心 장광규 세상을 살아가며 좋은 시절 꼽으라면 물정 모르고 철없이 지낸 어린 시절이라고 말할 거야 투정 부리며 갈길 더듬거리면 가족은 손 내밀어 따뜻하게 이끌어주고 보살펴주었지 행복한 시절을 묻는다면 부모님 계실 때라고 할 거야 조건 없는 사랑 베풀어 포근한 정 느끼게 하고 일상 속 실천으로 삶의 지혜를 배우게 했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은 대들보가 되어 든든하고 훈훈하지만 멀리 떠난 후엔 즐거움도 웃음도 시들하지 어려서나 어른이 되어서나 부모님 생전에 할 일 다해야 자식 된 도리이며 기쁨인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후회하지 2022. 11. 4.
시집에서(49) / 장광규 바위 靑心 장광규 새들이 노래하는 산속에서 물소리 시원한 냇가에서 혹은 동네 어귀에서 자연 그대로 숨 쉬며 쏟아지는 빗물로 목욕하고 눈 내리면 하얀 옷 입어도 보며 알맹이 있는 몸짓으로 너는 너를 보여준다 하늘이 파랗게 웃는 날도 바람 불어 추운 날도 움직일 줄 몰라 멋을 모르지만 이끼 낀 모습에는 부드러움이 있다 더러는 자꾸 귀찮게 해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놓지만 변할 줄 모르는 묵직함으로 겉도 속도 매한가지 단단함으로 너는 네 자리에 다시 선다 2022. 10. 12.
시집에서(48) / 장광규 자연의 경고 靑心 장광규 오늘은 비가 내린 후 구름이 끼겠다 내일은 아침 안개가 걷히며 대체로 맑겠다 올여름은 길고 더울 것이며 겨울엔 눈이 많이 내리고 포근하겠다 산과 들을 훼손하는 것도 강과 바다를 더럽히는 것도 맑은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도 너희들이 하더니 자연의 움직임까지도 너희들 마음대로 점치느냐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없어지고 집중호우가 자주 나타나고 매서운 한파에 폭설도 내리며 고온에 비가 안 내릴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너희들의 예보는 빗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맑은 하늘을 보는 것도 비가 알맞게 내리는 것도 기온이 기분 좋게 오르내리는 것도 계절이 계절답게 오고 가는 것도 엄청난 기상변화를 막는 것도 너희들 말보다는 행동에 달렸느니라 2022. 10. 5.
시집에서(47) / 장광규 복습 靑心 장광규 귀여운 아이야! 세 살 먹은 아이야 너의 곁에 있고 싶다 너의 울음소리가 듣고 싶구나 배고프면 젖 달라고 아프면 만져달라고 의사 전달하는 울음소리가 천진난만한 웃음이 참 좋구나 너의 거짓 없는 웃음처럼 진실된 마음만 남기고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싶다 맑은 눈을 다시 찾고 싶다 세상 일을 바르게 보고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제대로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은 걷지 못하여도 말할 줄 몰라도 큰 힘을 갖지 못했어도 아무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세 살 먹은 아이야 순수한 지혜를 다시 배우게 너의 곁에 있고 싶다 2022. 9. 30.
시집에서(46) / 장광규 오늘도 붓을 든다 靑心 장광규 말을 하되 짧게 하고 또한 신중하게 하는 것은 진정으로 말을 사랑하는 수줍음이다 수줍음을 타는 사람은 입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붓으로 나타내는 것을 좋아한다 봄날 푸른 새싹이 땅을 밀치고 순한 자태로 인사하면 반갑듯 구름 뒤에서 숨 고르기 하는 해가 나오기를 기다리듯 그리움이 밀려올 때 안부가 궁금할 때 간결한 모습으로 참신한 얼굴로 태어나려 힘쓴다 가까이 다가와 웃어주는 반짝이는 눈동자와 대화하기 위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마음에 담아 글을 쓰며 다듬는 즐거움이 있다 2022. 9. 21.
시집에서(45) / 장광규 황톳길 靑心 장광규 맨발로 다녀도 포근히 반겨주는 황톳길 걷노라면 쉬었다 가라며 고무신발 놓아주지 않았지 꼬불꼬불 좁은 길 비가 내려도 질퍼덕거리지 않게 신작로에 자갈 깔았지 이따금 버스 지나가면 황토먼지 자욱해 분간하기 힘든 길 손으로 부채질하며 걸었지 길가엔 질경이 민들레 돋아나 눈빛으로 인사 나누며 마음이 여유로웠지 흙냄새가 좋았던 길 아스팔트에 덮여 고무신 자국 질경이 민들레 황토먼지 잠자고 있지 2022. 9. 11.
시집에서(44) / 장광규 두고 온 고향 靑心 장광규 하루에도 몇 번씩 가고 싶지만 그때마다 갈 수 없어 마음속으로만 그려봅니다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도 이곳저곳 흩어져 살기에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습니다 어쩌다 찾아가는 고향 언제나 어릴 적 그대로의 그림 같은 모습을 보고 싶지만 자꾸만 자꾸만 변해갑니다 차라리 잊으렵니다 보고픈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이제는 고향에 아니 가렵니다 포근했던 추억을 빼앗아가는 변해버린 고향생각은 잊으렵니다 2022.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