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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심(心)이다104

시집에서(43) / 장광규 벌레 먹은 과일이 맜있다 靑心 장광규 생김새도 비슷하게 같은 핏줄로 태어나 햇빛이랑 바람이랑 다 같이 쐬고 내리는 비에 몸 씻으며 성장해도 열매는 등급으로 갈라서기 마련이다 가뭄에 먹을 물 제대로 못 먹고 불볕더위 찾아와 괴롭히고 때로는 태풍에 시달리느라 성장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잘난 척 힘센 척하면 몰라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심지어 벌레까지 얕보고 달려든다 클 만큼 크고 자라 상자 속에 잘 익은 것으로 색깔 좋고 큰 것으로 멍들지 않고 싱싱한 것으로 향기까지 골라 담으면 선택된 과일은 후한 대접을 받는다 벌레가 먹었거나 크지 못한 째마리 과일은 처량한 신세다 하지만 본디 벌레란 놈은 농약 안 뿌린 것은 잘도 알고 맛있는 것을 귀신같이 찾아내기에 벌레 먹은 과일을 버릴 것이 아니더라 2022. 8. 28.
시집에서(42) / 장광규 사람의 마음 2 靑心 장광규 파란 하늘을 보면 기분이 상쾌하고 계절은 봄이나 가을이 좋지만 때로는 비 오는 날이 기다려지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 그리워지고 사랑하며 살아야지 다투지 말고 살아야지 하면서 어느 순간 티격태격하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뉘우친다 순간을 참으면 웃으며 넘길 수 있음을 남의 단점은 눈으로 잘 보면서 나의 부족함은 잘 모르며 지낸다 남의 흉 하나면 나의 흉은 열인데도 돈보다 건강이 먼저라고 생각하면서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한다 세상사 돈으로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돈으로 풀 수 있는 일도 너무 많기에 흐르는 물 같다는 세월 그 세월이 빨리 간다고 붙잡으려고도 하고 세월아 빨리 가거라 재촉도 한다 열 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의 마음속은 알 수 없는 것 오늘.. 2022. 8. 20.
시집에서(41) / 장광규 열대야 靑心 장광규 장대비에도 꺾이지 않고 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덤으로 따라온 불쾌지수는 내다 버릴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이 괴롭힌다 아침부터 돌고 있는 선풍기는 헉헉거리며 마른기침을 하고 최신 성능 자랑하는 에어컨도 더운지 땀을 바가지로 흘린다 더위는 방안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근린공원으로 나가 열대야 수그러드나 살피다 온다 짧은 여름밤이 길게만 느껴지고 뒤척거리다 지쳐 잠이 들지만 자꾸만 흔들어 깨우는 찜통더위 낮에 본 분수대의 시원한 물줄기가 생각나고 얼음과자를 입에 물고 사는 아이들은 꿈속에서도 청량음료를 마신다 2022. 8. 10.
시집에서(40) / 장광규 여름 靑心 장광규 낮의 길이는 길기만 하고 태양은 엄청나게 커 보이고 나뭇잎은 우거지고 땀은 저절로 흐르고 더울 땐 그늘이 좋고 짧은 옷이 시원하고 청량음료를 마셔대고 장마가 찾아오고 태풍이 지나가고 물난리가 나서 어수선하고 삼복더위에 이열치열 하고 습도는 끈적끈적 올라가고 불쾌지수는 숨차게 높고 모기는 제철을 만나 활개 치고 아스팔트는 뜨겁디 뜨겁고 분수대의 물줄기가 높이 치솟고 샤워를 해도 그때뿐이고 선풍기는 더위를 먹고 에어컨은 몸이 불덩이 같고 근린공원으로 나가 열대야를 달래고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떠나고 햇볕에 탄 피부가 유행처럼 번지고 냇가로 미역 감으러 가고 무더위를 잊으려고 매미는 울어대고 논밭의 곡식은 쑥쑥 자라고 청과시장에는 맛있는 과일이 많고 비 그친 오후 무지개가 나타나고 2022. 8. 7.
시집에서(39) / 장광규 앞으로 가는 길 靑心 장광규 새벽이 밝아 오면 습관적으로 잠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쉼 없이 움직이는 시곗바늘처럼 하루를 여는 출발점에서 되풀이되는 동작 그것은 결승점에 다가가려는 몸짓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움직이거나 숨을 쉬기 마련이다 고분고분하거나 혹은 순진하다고 세상일이 알아서 척척 굴러가지는 않는다 남의 눈밖에 나게 억셀 필요는 없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행동은 오히려 퇴보일 뿐이다 버스 안은 목적지를 향하여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잠시 들렀다 가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이어서 지하철을 타고 정차할 때마다 물처럼 쏟아져 거품처럼 사라진다 무작정 앞으로만 간다고 잘 가는 것이 아니기에 흐르는 시냇물을 보며 지치지 않고 가는 법을 배운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버스도 전동차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 숨 고르기.. 2022. 7. 9.
시집에서(38) / 장광규 잠수교 靑心 장광규 한강에 길게 누워 서빙고에서 반포로 반포에서 서빙고로 강북과 강남 강남과 강북을 연결해주는 서울의 명물 비 내리는 계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며 가끔씩 불러보는 이름 잠수교 비가 쏟아져 물이 불어나면 물속에 잠기는 신세 이름값 하느라 그러는지 이름을 잘못 달고 태어난 건지 한 해를 넘기려면 몇 번은 잠수해야 하는 운명 비는 강북에도 내리고 강남에도 내리고 잠수교에도 내린다 2022. 7. 2.
시집에서(37) / 장광규 집중 靑心 장광규 일기예보를 통해 비가 올 것이라고 알린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오후부터 저녁 늦게까지 내린단다 아닌 게 아니라 오후가 되자 비가 내린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우산을 펼쳐 들고 다닌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일상의 잡다한 일들이 빗속에 씻기고 묻힌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거부감 없이 우산을 챙기고 비가 내릴 때 우산을 펼치면 세상이 차분해진 느낌이다 내리는 비 관심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2022. 6. 25.
시집에서(36) / 장광규 꽃의 향기 靑心 장광규 한눈에 반해버릴 만큼 아름다움을 지닌 꽃 어느 한 군데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해 보이는 꽃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싫증을 느끼며 돌리는 고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더 이상 예뻐지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외면하리라 소박하면서도 청순한 꽃 처음엔 별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가면 갈수록 나타나는 아름다움 보면 볼수록 더 예뻐 보이는 꽃이 향기도 모습도 더 좋으리라 2022. 6. 11.
시집에서(35) / 장광규 그늘에서 靑心 장광규 무더운 여름 햇빛은 못 이기는 척 피하는 것이 좋다 길을 걷다 그늘을 찾아 몸을 맡기면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준다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방안에 가득 찬 온도를 생각한다 안방으로 거실로 왔다 갔다 하는 뜨거운 바람들 나무 그늘로 불러내 고생한다며 다독거려 주고 싶다 다시 걸어야 할 시간이 되었는지 마음은 자꾸 바빠지는데 바람은 더 쉬었다 가라며 먼데 나뭇가지도 흔들어 준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그늘도 더위를 느껴 슬슬 피한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그늘의 움직임을 놓친다 햇빛이 가까이 다가와 함께 있자며 얼굴을 비빈다 2022.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