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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열며 / 장광규 방문을 열며 靑心 장광규 한 사람 집 떠나 멀리 일터로 가 아침이면 대문 열고 나가는 소리 저녁이면 하루일 마치고 들어서며 반갑게 웃는 소리 들리지 않아 대문도 방도 외롭고 고요하다 주인 기다리는 방은 아직도 하얀 눈이 펄펄 내리고 얼음이 꽁꽁 어는 겨울이다 잠자고 있는 달력을 깨워 잊어버린 시간을 가르쳐 주었더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다 멈춘 계절을 흔들어 30℃가 넘는 여름을 데려오고 날짜도 오늘에 이른다 월요일이 시작되고 토요일이 돌아오고 토요일엔 떠났던 사람이 온다 2010. 9. 23.
산다는 것 / 장광규 산다는 것 靑心 장광규 학교에 다니면서 일하면서 먹으면서 머리를 쓴다 공부하려고 영원한 기록을 만들려고 좋은 시 하나 남기려고 글을 쓴다 옷을 사려고 생활용품을 사려고 주택을 구입하려고 돈을 쓴다 가족을 위하여 일터를 지키려고 이웃과 사회가 있기에 마음을 쓴다 쓰는 것은 여유로움이며 살아 숨 쉬는 행복이다 2010. 9. 23.
세월 / 장광규 세월 靑心 장광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많은데 하기 싫은 일 하기도 했습니다 좋아하는 일 마음대로 하고 싫어하는 일 안 해도 되는 그런 날을 생각합니다 밤길을 걷는 시간은 답답하고 더디게 느껴졌습니다 꽃피고 새가 울기도 하고 바람 불며 눈도 내립니다 결혼을 하여 어른이 되면 잔소리 들을 필요도 없고 모든 일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았지만 스스로 개척해야 할 책임감은 큰 무게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 하나 둘 태어나 키우며 가르치며 함께 웃고 지내는 사이 아이들도 성장해 어른이 되고 손자 손녀도 태어납니다 문득문득 지난날을 돌아보면 빠르게 흘러간 시간들 그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2010. 9. 23.
장마 / 장광규 장마 靑心 장광규 장대비 한바탕 쏟아지고 장마전선 잠시 물러난 사이 그리운 추억이 찾아오네 장마가 진다더니 비는 내리지 않고 머리 위로 햇볕만 쨍쨍 동네 어른들 땀 뻘뻘 흘리며 "마른장마가 사람 잡네" 밭두렁에 심은 호박 넝쿨 뻗어 마디마다 열매 자고 나면 쑥쑥 커 어머니는 날마다 따오시고 물꼬 보러 논에 간 아버지 비에 젖어 들어오시네 2010. 9. 23.
매미여! / 장광규 매미여! 靑心 장광규 맴이라 불러도 좋을 곤충 매미여!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 햇볕 쏟아지는 한낮 너의 합창소리 듣는다 너의 요란한 울음소리는 너의 신나는 노랫소리는 대대로 전수를 받았는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오랜 세월 땅속에서 지내다 무더운 계절에 찾아오지만 밖에서의 삶은 짧기만 하다 너의 울음소리가 너의 노랫소리가 짝을 찾는 간절함이라니 너를 진정으로 인정한다 그래 사랑은 좋은 것 정말 소중한 것이다 2010. 9. 23.
동병상련 / 장광규 동병상련 靑心 장광규 말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오랜만에 만난 고종사촌 젊은 날의 모습은 조금뿐 어느 사이 보기 싫게 머리카락 빠지고 남은 머리 까맣게 물들였네 나이는 같지만 먼저 태어나 형이 되는 셋째 고모의 큰아들 서로 비슷한 외모 때문에 같은 고민 하나 더 갖고 사네 고모님은 고종형에게 외갓집 할아버지를 닮아 머리카락이 빠지는 모양이라고 여러 차례 말을 했을 것 같네 좋은 것 자랑스러운 것도 아닌 불편한 흔적 물려받아 서운해하고 있지나 않은지 고종형에게 미안한 마음이네 고종형을 만나면 할아버지가 그리워지네 2010. 9. 23.
비도 연습한다 / 장광규 비도 연습한다 靑心 장광규 때로는 비도 연습이 필요한가 보다 여름철이 지났는데 비가 자주 내린다 여우비인지 호랑이 장가가는지 햇빛 속으로 내린다 재고량이 너무 많아 조절을 하는 모양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슬금슬금 내린다 제철 장맛비인 듯 아닌 듯 내린다 2010. 9. 23.
가을이 오는 길에서 / 장광규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靑心 장광규 자유롭고 시원스레 잠자리 날고 있다 부러운 눈빛을 보내는 동안 멀리 가지 않고 맴돌며 한번 날아보라 날갯짓이다 나뭇가지에 앉아 잠시 쉬며 기다릴 테니 준비하고 따라 하란다 날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날아보려는 시늉도 못하고 땅바닥에 발을 디딘 그대로다 이렇게 쉬운 걸 못하다니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자리를 뜬다 낮지도 높지도 않게 잠자리 날고 있다 2010. 9. 23.
한가위 / 장광규 한가위 靑心 장광규 달은 커다란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고 산들바람이 불어 몸도 마음도 시원하네 가을 들녘의 온갖 곡식은 단정히 고개 숙인 모습으로 오늘이 있기까지 도움을 준 햇빛과 바람에게 물에게 땅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있네 그리운 얼굴들 보고픈 얼굴들이 다정히 손잡고 만나 마주 보고 웃으며 한자리에 모이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차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큰 절을 올리고 낳아 길러주고 보살펴준 어머니 아버지의 고마운 정을 생각하네 쌓였던 이야기 주고받으며 즐겁게 웃으며 지내리 일상의 시름 내려놓고 여유롭게 쉬어도 좋으리 지친 몸 충전하여 내일은 더 건강하리 높이 떠 있는 저 달처럼 둥글게 오래오래 웃으리 2010. 9. 23.